'넌 왜 슬로베니아를 선택했니?'는 슬로베니아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이 자주 묻던 질문이었다. 그럼 나는 슬로베니아가 나에게 유일한 선택지였으며 인생에서 한번 쯤 오고 싶었던 유일한 나라였다고 답했다. 마치 아름다운 운명처럼 말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들이 있었다. 해외 살이가 궁금하기도 했어도 나는 부모님께 반 년의 경험을 위해 몇 천만원의 돈을 여쭤보기가 미안한 맏딸이었다. 유럽의 교환학생은 영어로 된 전공 수업이 없어서 공부를 안하고 놀고 오기만 한다는 먹지 못하는 신 포도 같은 이야기를 믿으며 아쉬움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교 때 한번 갔다 와볼 걸 싶어서 아쉽긴 하다. 그랬다면 20대를 덜 무리하지 않고 사는 지혜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이번 교환학생..
멕시코 시티는 2천 만 명이 사는 대도시다. 한국처럼 대중교통, 병원, 식당 등 대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사람이 많다는 느낌이 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KFC, 맥도날드, 서브웨이, 공차가 있어서 반가웠다. 치안에 대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길거리와 상점을 갈 때마다 경찰 또는 보안 요원들이 서서 감시를 했고, 버스에는 여성 전용칸이 있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는다면 멕시코 시티는 매력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인 것 같다. 일정 상 1.5일을 멕시코 시티에서 보냈고, 멕시코 시티에서 인상깊었던 3가지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멕시코의 볼거리와 먹거리 멕시코와 한국은 시차가 14시간이다. 그래서 오전 10시부터 살짝 졸리기 시작했다. 그래..
유나이티드 항공의 멋진 서비스 유나이티드의 10시간 비행에서는 총 2번의 기내식과 간식이 있었고, 이제까지 타본 비행기 중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았다. 맥주와 음료수를 요청하면 캔을 통째로 주고, 음식 맛도 매우 좋았다. UX를 공부한 사람이다보니 기내 엔터테인먼트 스크린에 관심이 갔다. 기내 엔터테인먼트의 인터랙션이 깔끔하고 친절했다. 기내식을 언제 주고, 소등과 점등을 언제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나와있는 항공사는 처음이었다. 스크린 내에 휴식 모드가 따로 존재해서 편리했다. 인터랙션의 반응 속도도 매우 빠르고 정확해서 다시 눌러야 하는 불편함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항공사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비행이였다. 인생사는 새옹지마라더니 '언제 또 이런 좋은 비행기를 타보나' 싶었다. 여행 친..
[주의] 2017년의 이야기이므로 현재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애기를 나누면 그들은 'Where are you from?'을 늘 묻곤 한다. 한때 탄자니아에서 지낼 때는 'Where are you from?'을 묻는 사람들을 대체로 경계하는 편이었다. 왜냐면 출신 국가 얘기를 하며 억지로 친해지려 한다는 게 느꼈기 때문이다. 친해지고 싶어한 이유는 대부분 나를 자신의 물건이나 여행 상품을 사주는 친구로 만들고 싶어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꼬인 마음이 풀렸지만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대체로 빠지는 2가지 이야기 레파토리 패턴이 있다. 첫번째, North Korea 탄자니아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은 꽤 위험한 나라로 알려진 것 같다. 북한의 지도자를 비하하기도 하고, 그를 정..
아침 7시 4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갔다. 아버지가 공항까지 태워주셨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을 했다. 택시를 타야겠다고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는 지인 분께서 카카오T 택시비를 선물로 보내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연애(?)와 관련한 의도는 전혀 없음에도 아버지는 누가 그렇게 해주냐면서 신기해하셨다. 주변에 참 감사한 사람이 많고, 그 감사함에 항상 다른 방향으로도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탑승 불가라니 내 일정은 일본과 미국을 통해서 가는 것이었다. 일본을 나갔다 들어오는 자가 환승이어서 일본 비자가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6월 말에 비행기 티켓을 파니 7월 말에는 괜찮을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했다. 막상 체크인 카운터에서 티켓 발권을 거절..
디자인 대학원 1학기를 마친 첫 방학, 바쁘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멕시코에 갈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비행기 값에 놀라서 비행기 발권을 미뤄두고 있었다. 과연 멕시코에 가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6월 말 쯤이 되어서 거금을 주고서라도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비용 지원을 해준다고 하기에 기대를 했는데 일부만 주셔서 고민이 좀 더 길어졌던 것도 있다. 물론 지원을 받기 위해 고생해주신 교수님들과 비행기값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왜 이번에는 멕시코인가? 대학원 수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포럼이 멕시코에서 열린다고 했다. 4일 간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란 안내를 4월부터 받았는데 막상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돈은? 시간은? 비행기를..
탄자니아에서 여행하기 :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킬로만자로 산 내가 지내던 아루샤라는 도시는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현지인들도 관광업을 가장 큰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듯 했다. 길거리에서 "두유 원 투 고 사파리?"로 말을 걸며 호객하는 사람들, 팔찌를 사달라고 쫓아오는 아이들, 다른 영어는 못해도 "Welcome to Tanzania"만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그들을 위한 것인지 늘 고민했고,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모른 척 지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외국인들이 아루샤라는 도시에 방문하는 이유는 대체로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가거나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로만자로 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다. 길거리에서는 한국 분들도 가끔 만날..
겪어보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치안 아프리카에 잠깐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처음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땐 편견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여행으로 처음 가고자 했다면 나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때는 국가 사업으로 파견되는 신분이었기에 나는 늘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고, 내 결정은 결코 대책 없이 무모하지 않은 셈이었다. 그렇지만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나의 모험심 때문에 파견 기관장님께 걱정을 끼쳤던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고, 훗날에서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지금 그 분과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웃으며 뵐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국은 새벽 3~4시에 길을 걸어다녀도 매우 안전한 나라다. 밤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