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2017년의 이야기이므로 현재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애기를 나누면 그들은 'Where are you from?'을 늘 묻곤 한다. 한때 탄자니아에서 지낼 때는 'Where are you from?'을 묻는 사람들을 대체로 경계하는 편이었다. 왜냐면 출신 국가 얘기를 하며 억지로 친해지려 한다는 게 느꼈기 때문이다. 친해지고 싶어한 이유는 대부분 나를 자신의 물건이나 여행 상품을 사주는 친구로 만들고 싶어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꼬인 마음이 풀렸지만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대체로 빠지는 2가지 이야기 레파토리 패턴이 있다. 첫번째, North Korea 탄자니아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은 꽤 위험한 나라로 알려진 것 같다. 북한의 지도자를 비하하기도 하고, 그를 정..

탄자니아에서 여행하기 :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킬로만자로 산 내가 지내던 아루샤라는 도시는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현지인들도 관광업을 가장 큰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듯 했다. 길거리에서 "두유 원 투 고 사파리?"로 말을 걸며 호객하는 사람들, 팔찌를 사달라고 쫓아오는 아이들, 다른 영어는 못해도 "Welcome to Tanzania"만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그들을 위한 것인지 늘 고민했고,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모른 척 지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외국인들이 아루샤라는 도시에 방문하는 이유는 대체로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가거나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로만자로 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다. 길거리에서는 한국 분들도 가끔 만날..

겪어보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치안 아프리카에 잠깐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처음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땐 편견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여행으로 처음 가고자 했다면 나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때는 국가 사업으로 파견되는 신분이었기에 나는 늘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고, 내 결정은 결코 대책 없이 무모하지 않은 셈이었다. 그렇지만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나의 모험심 때문에 파견 기관장님께 걱정을 끼쳤던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고, 훗날에서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지금 그 분과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웃으며 뵐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국은 새벽 3~4시에 길을 걸어다녀도 매우 안전한 나라다. 밤 11시..

이력서에 간지나게 쓰는 특기 : 스와힐리어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 스와힐리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문명4라는 게임의 오프닝 OST인 'Baba yetu(바바 예투)'는 스와힐리어로 된 주기도문을 가사로 사용한 노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baba는 '아버지', yetu는 '우리'라는 뜻이다. 문명이란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인들이 어느날 이 노래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이 글도 바바 예투를 들으며 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쓰는 '사파리'라는 단어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현지에서도 사자와 치타가 있는 국립공원을 통칭해서 사파리라고 묶어쓰는 것에 익숙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전역에 펼쳐진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이온킹'에 나오는..

3주 머리 안 감기 챌린지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리에겐 공기 같은 PC방과 e-sports 경기 직관을 흥미로워했던 외국인들처럼 나도 탄자니아에서는 탄자니아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다. 이런 성향 덕분에 인도에 가서는 헤나를 하고 왔는데 주변 사람들은 문신인 줄 알고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했다. 정작 본인은 라는 만화의 칸쿠로가 된 듯한 기분에 신났는데 말이다. 아무튼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던 드레드 머리를 해보고자 결심했고, 직장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빠른 시일 내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드레드 머리란 오버워치의 루시우 같은 머리라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내 머리로 정말 드레드 머리를 ..

그만 좀 쳐다봐! 평생 동안 연예인 취급을 받아볼 일이 있을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보니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연예인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탄자니아의 수도에만 가도 사업과 공무,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내가 있던 아루샤라는 도시는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주 쯤에 해당하고,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였다. 그 곳에서 나는 꽤 특별한 존재로 비춰졌던 것 같다. 탄자니아 주민들 입장에서는 유럽 관광객들과 토목공사를 하러 온 중국인들만 자주 봤을텐데 20대 동아시아인 여자를 처음 본 눈치였다. 처음 탄자니아의 길거리를 걸을 때 힘들었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시선을 피하면서 가도 누군가가 나를 신기하게 ..

아프리카를 다녀왔다고? 전 회사에서 모셨던(?) 상사님은 어느 날, 내가 탄자니아에서 몇 년을 살고 온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겨우 5달이었냐고 놀리시기에 틈만 나면 탄자니아 얘기를 꺼낸 게 부끄러워서 그 이후로는 크게 언급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 5달의 해외 살이는 그만큼 나에게 큰 문화충격을 안겨주었고,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가끔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으로 비춰지는 후광효과도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 용사로 포장이 되었는데 심히 부끄러웠다. 한달 살기가 지금도 유행인지 모르겠으나 많은 지인들은 최소 워킹홀리데이와 교환학생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나란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고 왔다니.. 신박한 이야기로 비춰질 법 했다. 원래 눈에 띄는 기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