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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에 간지나게 쓰는 특기 : 스와힐리어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 스와힐리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문명4라는 게임의 오프닝 OST인 'Baba yetu(바바 예투)'는 스와힐리어로 된 주기도문을 가사로 사용한 노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baba는 '아버지', yetu는 '우리'라는 뜻이다. 문명이란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인들이 어느날 이 노래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이 글도 바바 예투를 들으며 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쓰는 '사파리'라는 단어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현지에서도 사자와 치타가 있는 국립공원을 통칭해서 사파리라고 묶어쓰는 것에 익숙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전역에 펼쳐진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이온킹'에 나오는 심바는 스와힐리어로 '사자'라는 뜻이고, 암사자인 날라는 '선물', 품바는 '멍청하다', 라피키는 '친구'라는 뜻이다. 사자인 주인공 이름이 사자라니! 좀 더 신경써서 지으면 어땠을까 싶다.
몇 달씩 살아야 하는 나라에 가기 전에 미리 그 나라의 언어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 2언어가 영어지만 탄자니아에서는 스와힐리어라는 언어를 제 1언어로 쓰고 있다. 그래서 탄자니아에 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책 한 권을 사서 틈틈히 숫자, 인삿말과 '얼마에요?', 요일, 문장 구조와 발음까지 외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단어 외우기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의 장벽은 어휘 늘리기다. 실력이 좋지 않아도 지금도 특기와 취미를 쓰라는 진부한 이력서에는 스와힐리어를 특기로 적기도 한다. 한국에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1000명이 될까? 독특한 건 틀림 없다. 제법 스와힐리어를 하는 시늉은 낼 수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꼭 들려주고 싶다.
가끔 각 언어를 쓸 때마다 인격이 달라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한국어로 말을 할 때면 나는 평범한 20대 장난꾸러기지만 영어를 할 때는 착하고 얌전한 초등학생이 되는 것 같고, 스와힐리어는 아마 5살 어린이가 사용하는 수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배고파', '고마워' 정도만 제대로 할 줄 안다.
토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이래요
언어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어휘 측면에서는 요일과 월에서 이슬람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토요일을 일주일의 시작으로 언급하는데 국민의 반이 이슬람교고, 반이 기독교다 보니 금요일에도 학교를 쉬고, 일요일에도 학교를 쉬었다.
직접 배워보니 영어의 사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와 똑같이 SVO(주어, 동사, 목적어)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 문법을 치환한 느낌이 컸다. 표기도 로마자로 하고 읽는 방법도 a, e, i, o, u는 각각 바로 아, 에, 이, 이, 오 우로 읽으면 된다. 그런데 발음과 어휘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발음은 뒤에서 2번째 모음에 강세를 넣는다. '미안하다'는 뜻의 samahani는 '사마하↑니'로 읽고, '여기 와서 기뻐'라는 것은 Nimefurahiya kuwa hapa라고 쓰고, '니메푸라히↑야 쿠↑와 하↑파'라고 읽는다. 읽기와 문법은 쉬워보여도 막상 실제로 들으면 너무 빠르고, 이 사람이 '하파'라고 했는지 '하포'라고 했는지 헷갈리곤 한다. 불규칙한 표현들이 많아서 돌아서면 늘 까먹었다.
스와힐리어를 배워서 좋았던 점은 스페인어를 배우기 편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음 목표로 남미를 가고 싶어서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스페인어 교양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스와힐리어와 강세 발음과 읽는 방법이 동일해서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다. 생각치 못했던 장점이었다. 물론 어휘는 매우 달랐다.
스와힐리어의 본토에 가보다!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에서 시작하여 동아프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다. 따라서 탄자니아에서 표준 발음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에서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현재 탄자니아에서는 120 여 개의 부족이 살고 있고, 각 부족마다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스와힐리어'를 만들었고,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 부족어를 배우고, 5살 쯤 부터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2-30대의 탄자니아인들은 최소 3개의 언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와힐리어의 발음을 들어보면 어떤 부족 출신인지 서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마다 하기 어려워하는 발음이 있거나 자신의 부족어가 스와힐리어 발음에서 튀어나온다고 한다.
내가 일하던 기관에서도 메루족, 파레족 등의 다양한 부족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니메쉬바', '푼구자' 등의 스와힐리어 생활 표현을 알려주었다. 대체로 '배고파', '집중하세요!', '고마워', '미안해' 등의 짧은 언어였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도 가끔 한국어를 알려주었다. 동료들이 내가 대표님과 한국어로 얘기하는 내용을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일하던 곳의 대표님이 한인이니 한국어, 프로그래밍 수업을 할 때는 영어, 생활할 때는 스와힐리어로 3개 언어를 일상에서 섞어 쓰다 보니 혼란이 왔고, 0개 국어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스와힐리어를 알면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돈으로 사기를 치려는 친구들을 미리 차단할 수 있었고, 스와힐리어와 마사이족이 쓰는 마사이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운송업계에 일하는 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데 이 분들에게 쓰는 표현들도 배웠기에 현지인처럼 다니기가 수월했다. 예를 들면 여기에 내려달라고 하기 위해 '슈카 하파'라는 말을 참 많이 써서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못내 아쉬워서 탄자니아 대사관과 아프리카 인사이트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스와힐리어 기초 과정을 수강했다. 문법과 단어를 조금 더 알긴 했지만 아무래도 공부를 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때의 나는 대학교에서 18학점을 들으며 공채 취준 중이라 복습을 열심히 하지 못했다. 20만원이었나, 25만원이었는데 그때는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 돈은 펑펑 쓰는 편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인사이트에서는 좋은 일을 많이 하니 한번 찾아보시길.
[아프리카 인사이트 - http://africainsight.or.kr/]
싸우지 않는 사람들
120여 개의 부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고,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반반씩 섞인 이 나라를 설명하면 사람들은 갈등이 없는지를 꼭 묻곤 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는 이슬람교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 안에서는 이슬람교에 대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탄자니아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다. 120여 개의 부족들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고, 이슬람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신에게 최선을 다한다. 남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특정 종교와 부족에 대한 편견도 탄자니아 안에서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현지 기독교인들은 부인을 여러 명 두는 이슬람교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종종 생각하는 듯 했고, 00족은 돈을 좋아한다는 편견으로 놀림감이 되곤 했다. 그것은 그들이 언젠가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탄자니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정말 탄자니아는 그들이 얘기한대로 peaceful country다. 우리 사회도 이렇게 차이를 포용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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