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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의 평범한 길거리. 큰 길가는 아스팔트 처리가 잘 되어있다.

 

그만 좀 쳐다봐!

  평생 동안 연예인 취급을 받아볼 일이 있을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보니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연예인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탄자니아의 수도에만 가도 사업과 공무,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내가 있던 아루샤라는 도시는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주 쯤에 해당하고,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였다. 그 곳에서 나는 꽤 특별한 존재로 비춰졌던 것 같다. 탄자니아 주민들 입장에서는 유럽 관광객들과 토목공사를 하러 온 중국인들만 자주 봤을텐데 20대 동아시아인 여자를 처음 본 눈치였다.

  처음 탄자니아의 길거리를 걸을 때 힘들었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시선을 피하면서 가도 누군가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는 느낌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어깨나 팔을 툭툭 치며 말을 걸거나 잠깐 와보라는 듯이 부르고, 번호를 달라고 하고, 호객 행위를 하면서 어디론가로 나를 데려가려고 했다. 짧은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식당에 가도 나를 보고 수군대고 사진을 찍는다면? 여행자가 아닌 신분으로서 편안한 일상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뭐길래 그리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인가?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점차 이런 상황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왜 괴롭히는 것일까?

  길거리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눠볼 수 있었다. 첫번째,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내 경험 상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한 할아버지께서는 길을 헤매는 나를 도와주시고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갈 길을 떠나셨다. 본론으로 들어가실거라 당연히 생각했는데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하시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셨다.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두번째, 국립공원 사파리나 자신이 관련된 가게를 위한 호객행위인. 처음에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몇 분이 지나면 자신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대체로 이런 친구들을 따라가면 덤터기를 당하기 쉽다. 세번째, 나를 흥미거리로 삼고 싶은 사람. 'Hey China(헤이 치나)'라고 멀리서 부르거나 어디 가는지를 묻는다. 이런 경우를 'Cat Calling'이라고 한다는데 그 방법들도 다양하다. 중학생들은 뒤에서 몰래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지나가기도 했고, 20대 남자 무리는 어느날 버스에서 자고 있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야 일어나봐"라고 시비를 걸며 킬킬댔다. 짜증나서 계속 자는 척을 했지만 속에서는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었다. 만약 적응 초반이었이면 무서웠겠지만 익숙해지니 짜증만 났을 뿐이다.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대인기피증인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한달 만에 대인기피증과 비슷한 심리적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왠만하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나 자신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코난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설레하는데 나는 어떤 일이 닥칠 지 걱정부터 들었다. 큰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야 겨우 출근을 하는 내가 어느날 너무 무서웠다.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도 여러 번 생각했다. 탄자니아에 사는 한인 분들은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다닌다. 그 분들은 길거리를 걱정 없이 걸어다니고, 200원짜리 현지 버스를 타고 다니던 나를 대견해하시면서도 걱정하셨다.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근무하던 NGO 대표님이 원래더 출퇴근을 도와주셨지만 개인적인 이동까지 그 분께 부탁드릴 순 없었다. 회사 일이 끝나면 집으로 숨어드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겪은 연예인병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갑자기 훅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방어적으로 변하고,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조금 까칠해졌다는 것이다. 쉽게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시작하니 내 존재감이 조금 휘청거렸다. 그래도 최소한 누군가에게 그런 힘든 마음에 대해 보상이나 대접을 원하거나 내가 대단한 존재인 것 마냥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믿을 만한 사람들은 바빴고, 솔직한 진심을 털어놓기가 미안해다 보니 마음도 답답하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한국에서 사랑하던 나의 지인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해줬는지 돌아보았다. 이게 내가 맞는지 위화감도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루샤라는 도시가 익숙해졌다. 여러가지 대처법이 생겼다. 어느 날 선글라스 하나만 꼈는데 길거리에서 '야 중국인아!'이라 부르며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어느새는 선글라스, 모자, 이어폰을 끼고 외출에 나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 머리카락 모양과 눈을 보고, 앞이나 뒤에서 따라붙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완전 무장을 하고 난 이후에는 길을 편히 다닐 수 있었다. 언젠가 탄자니아인 회사 동료에게 '난 걸어다는 돈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그런데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괴롭히니까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기 시작했어. 눈을 못 알아봐서 안 괴롭히는가봐'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는 '아냐, 네가 선글라스를 안 쓰고, 그렇게 생겨서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큰 위로를 받았다.

 

 

연예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연예인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할 때 돈과 명성을 얻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덧글들을 인터넷에서 볼 때가 있다. 얼마나 몰상식한 이야기인지는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일까? 내가 어떤 취급을 받는 것과 내가 가진 것은 상관이 없다. 내가 탄자니아인들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와서 돈이 더 많고(실제로 그렇지도 않고),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로 외계인 또는 걸어다니는 돈으로 취급해도 될까?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탄자니아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이곳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라 어느 순간 자각했을 땐 마음 속에선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물론 지금의 난 탄자니아와 탄자니아 사람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나에게 공감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길거리에는 조용히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따뜻하게 "Welcome to Tanzania"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덕분에 나는 탄자니아라는 나라의 매력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여행이 겁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인건비도 싸고, 갈 만한 곳들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사와 차를 렌트해서 즐겁게 원하는 곳을 다니는 것을 추천드린다. 즐겁게 볼만한 것이 많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해외에서 온 사람, 외모가 해외에서 온 사람들을 닮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어때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런 생각을 소수자와 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까지 확장하고 있다. 나와 외모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요즘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 집단의 성격으로 그 사람들들을 정의하지 않는 것. 그것을 잘 알고 있다면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갈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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