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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다녀왔다고?
전 회사에서 모셨던(?) 상사님은 어느 날, 내가 탄자니아에서 몇 년을 살고 온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겨우 5달이었냐고 놀리시기에 틈만 나면 탄자니아 얘기를 꺼낸 게 부끄러워서 그 이후로는 크게 언급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 5달의 해외 살이는 그만큼 나에게 큰 문화충격을 안겨주었고,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가끔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으로 비춰지는 후광효과도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 용사로 포장이 되었는데 심히 부끄러웠다.
한달 살기가 지금도 유행인지 모르겠으나 많은 지인들은 최소 워킹홀리데이와 교환학생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나란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고 왔다니.. 신박한 이야기로 비춰질 법 했다. 원래 눈에 띄는 기행을 일삼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한치의 망설임과 편견 없이 아프리카행을 택했던 것 같다. 무사히 돌아온 지금은 아프리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는 자부심도 조금 있다. (참고 :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는 국가 목록에는 아프리카에 속한 국가가 없습니다.) 일도 하고, 여행도 다녔으니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탄자니아에 간 3가지 이유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2017년을 갭이어로 보내고자 다짐할 때까지만 해도 뚜렷한 계획은 없었다. 영어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어르신들이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는 해외에 1달 이상 오래 나갔다 와야 한다는 조언을 하셨던 것만 늘 기억하고 있었다. UX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쁜 겨울을 지나 봄에는 한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하던 퍼포먼스 마케팅 일은 나에게 잘 맞지 않았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얘기하지만 출근하기 싫어서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할 정도까지 나를 몰아세우진 않기로 했다.
해외를 오래 나갈거면 갭이어를 보내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번 다녀온 해외 IT 봉사단 프로그램에서 장기 단원을 뽑는 공고를 보았다. 일을 하기엔 채용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고,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기엔 돈이 많이 들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봉사단은 매우 흥미로웠다. 곧바로 수석 연구원님께 전화를 걸었고, 지원하여 봉사단에 합격했다. 봉사활동을 가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 3가지를 생각해보았는데 이 3가지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1) 국제개발이란 진로 탐색하기
대학교 2학년 때, 국제학 부전공을 고민할 정도로 평소 세계시민으로서의 내 역할을 고민했다. 고등학교 수업 과제로 직접 텀블러 컵을 팔아서 아프리카 NGO에 기부도 했고, 아프리카 관련 NPO에도 잠깐 활동할 정도로 신기하게도 세계 문제에 관심이 쏠렸다. 이렇게 기적 같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많은 기회를 누리고 산 것을 감사하는 나로서는 다른 세상(나라)에 있는 사람들도 다같이 이 기회와 좋은 것들을 누렸으면 했다. 그래서 국제개발이라는 분야를 알면서 내가 앞으로 국제개발 쪽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들을 업계에서는 필요한지 알아보는 시간을 삼았다. IT 봉사단은 그런 업계를 체험할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2) 해외에 오래 살면서 적응력 기르기
유학을 한번쯤 꿈꾸면서 걱정되는 부분은 해외에서 오래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잘 적응하고, 살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해외에 있을 땐 어떤 점이 힘든지, 해외에선 무엇을 누릴 수 없는지, 나에게 무엇이 중요했는지를 늘 고민해보았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 해외 계획을 세울 때에도 고추장 하나라도 더 싸갈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음 기나긴 여정에는 꼭 오X기 설렁탕을 챙겨갈 예정이다.
3) 4개의 선택지, 탈아시아 하기 + 영어로 일하기
4개의 파견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몽골, 태국, 몰도바, 탄자니아였는데 이왕 가는 거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서 아시아 국가인 몽골과 태국을 제외했다. 몰도바와 탄자니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는데 몰도바는 동유럽에 있으며 루마니어를 쓴다고 했다. TV에서 본 양궁 선수가 기억에 남던 나라였다.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에 있고, 공용어로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쓴다고 했다. 이왕 가서 영어를 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탄자니아를 택했다. 실제로 가보니 영어로만 소통하며 살 순 없었지만 영어를 쓰면서 일할 수 있었던 게 큰 장점이었다.
2년 만에 꺼내놓는 나의 탄자니아 이야기
이제는 상사님을 포함해 탄자니아 얘기로 주변 사람들을 그만 괴롭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릿 속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겨우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야기들은 실타래처럼 엉켜있었고, 추억들은 희미해지고 있다. 기록을 남긴다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방대한 이야기를 어떤 초점에 맞춰 정리할 지 어려웠고, 부족한 식견으로 이야기를 꺼내놓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도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미성숙하다고 느낀다. 얘기하는 내용에 편견이 있을까, 내 입에서 사실이 와전될까봐 걱정도 많다. 편견과 부족함이 스며든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구독하던 뉴스레터에서 NEVER UNDERESTIMATE YOURSELF라는 문구를 보았다. 그동안 내 생각, 내 느낌을 스스로 존중하지 못했다고 자각했고, 어떻게든 쓰면서 생각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란 아쉬움으로 블로그를 다시 펼쳤다. 한국 사회에서는 요즘 차별과 다양성 문제가 화두인데 인종 차별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에 살고 있는 탄자니아인들을 포함한 흑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고, 응원을 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청춘의 한 장면을 장식한 탄자니아와 작별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가끔 내 발목을 잡는 이 이야기들을 풀어놔야만 한다.
그래서 탄자니아는 어땠나요?
나는 내가 세웠던 3가지 목표와 질문에 답을 찾아왔고, 지금도 가끔 그 답을 다시 돌이켜본다. 가기 전과는 다른 포부를 안고 돌아왔고, 지금은 열심히 IT 업계에 종사하기로 결심했다. 탄자니아에서 얻은 교훈을 잊어버리는 순간도 많지만 다시 노력해본다. 여유와 이상을 잃지 않고 살기로.
지인들에게 탄자니아 여행을 늘상 추천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 달 있어보니 정말 재밌고, 값진 순간이 많았다. 그 순간들을 나만의 관점, 가치관, 철학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열심히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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